되살아난 기사, 히더린 비체에게 주어진 것은 12주간의 짧은 삶.
그리고 왕 살해라는 목표.
…와 육아.
제한 시간 안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방황하던 히더린은 살아생전 그녀를 증오하던 성기사와 재회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한때 고결했던 성기사는 인생 밑바닥을 전전하는 주정뱅이로 전락해 있었다.
“관심 없어.”
“넌 관심 있는 게 뭐야?”
“네가 꺼지는 거.”
“이런, 유감이야. 관심 있는 일을 겪을 수 없게 됐네.”
뿐만 아니라 히더린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명예와 영광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그 여자가 없는데.”
***
“비체 경.”
“히스라고 부르라니까.”
“그래도 되나.”
“그래도 되긴 뭐가 그래도 돼. 히스라고 부르라고.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잘만 부르더니… 술 조금 처마셨다고 아주 맛이 갔군. 아, 조금이 아닌가.”
사르그는 망설였다.
그녀는 흔쾌히 애칭을 허락했지만 사르그는 그 이름을 자연스럽게 발음할 자신이 없었다.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는 수십 번이고 홀로 불러 본 이름이었지만 그녀 앞에서 불러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늘, 불러 보고 싶었다.
그러니 한 번쯤은 괜찮을 것이다. 한 번쯤은.
한참 망설이던 사르그는 간신히 입술을 달싹였다.
암튼진짜... 전반적으로... 엄청... 진짜 훌륭함...ㅠ 감동받음... 너무 완성도 높아서...
읽으면서 리셋레 생각을 몇번 했는데 아무래도 약간 미스터리물같은 구성이 있다보니 생각이 난듯
다 본 결과 두 작품은 꽤 다르지만 그래도 미스터리물을 바탕으로 한 로판중에선 둘다 ㄹㅇ 비할데가없는듯
이 작품은 '반복'을 정말 잘 사용하는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주인공부터 시작해서 (회귀x 진짜 시체임 o)
같은 사건을 다른 사람의 시점으로 재구성하며 반복해서 보여주고
심지어는 일부러 같은 묘사와 같은 단어 같은 문장을 문단 단위로 반복적으로 사용해서 강조하기까지...
이렇게 같은 게 계속 반복되면 필연적으로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이 부분을 미스터리물의 묘미인 진실 가리고 서술하기와 문장력... 캐릭터메이킹... 그니까 필력으로 기막히게 커버한듯... 오히려 극적으로 강조되는 장점만 살린... 진짜 필력 .. 미침..
결국은 이게 하나의 메인 테마로 보이는데 (사실 그래서 더 리셋레 생각남ㅋㅋㅋ)
메인 테마만 보면 분명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났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게 씁쓸하고 찝찝한 뒷맛을 남긴것도 참... 근데이게 또 심각하게 재고해보면 사실 씁쓸할 일도 아닌데... 그치만 씁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묘사 때문이겟지... 독자와의 설득배틀에서 승리하신...
그니까 메인 테마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면 가능하면 최악과 이기 대신 최선과 이타를 택하자... 라는 건데
이 부분에서 히더린-사르그의 엇갈림이 좋았던 거임 ㅠ
둘 다 한때는 반짝반짝 빛나는 '최선과 이타'를 품고 있었음
그게 어느 순간에는 히더린에게서 더 빛났고 어느 순간에는 사르그에게서 더 빛나서
그 순간을 목격한 두 사람은 서로가 서로를 자신의 빛이라고 생각한 거지
하지만 각자가 현실과 타협해가며 그 빛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상대에 대한 몰이해적인 동경으로 인해... '저 사람은 나는 닿을 수 없는 높은 곳에 있고 더러운 내가 닿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 ㅆㅂ 동경은 이해로부터 가장 먼 감정이다 -아이젠 소스케-
하... 이 관계성 진짜 기가막히지않음??? ㅠㅠ 둘 다 한때 빛났었고 둘 다 때가 탔을 뿐인데 그 타이밍이 어긋나서 그냥 손을 못 대고 마냥 멀리에서 보기만 했다는 게...
하지만 그 엇갈림이 결국엔 이런 아름다운 결말을 가져오고........
그.치만? 결말이.아..아름다운가? (ㅠㅠ
그니까 결말까지도 마가리테가 둘을 완전히 용서치 않는 게
현실적으로도 핍진성 있지만 사실 은유적으로 보자면... 어떤... 일종의 천벌인 거지
히더린이든 사르그든 어쨌든 죄를 지으며 살았기 때문에 (저는사실.경중을따지자면.히더린이더죄가많다고생각합니다.아무튼) 마냥 행복한 결말을 주는 건....... 안되는 거임
장르문법을 파괴하면서까지 받아야 할 마땅한 응보인 것...
이런 부분까지 정말 좋다............
암튼정말... 수작임... 진짜 재밋게 읽었다
감정선은 말할것도 없고 어디 하나 빠지는 구멍 없는 미스터리물적 재미에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여자주인공 캐릭터도 있고... 세계관도 생각 이상으로 본격적인 판타지 세계관인데 (제법 정통성 있음 일단 데스나이트가 나오죠?) 딱 필요한 부분만 설명하고 나머지는 가차없이 버려서 묘사에 군더더기도 없음... 진짜 이거야말로 강약조절임... 크; 계속감탄함;
하...
조앗다
충족감
근데진짜 책을 끝까지 붙잡고 읽게 만드는 원동력은 미스터리물이 젤 강한거같음; 그리고 녹슨칼은 그 미스터리를 여럿 중첩시켜서 더더욱 ... 그걸 효과적으로...
그래서 진실이 뭔데? + 과거에 무슨일이 있었던 건데? + 얘의 비밀은 뭐지?
대략 이정도 3중중첩인데 진짜 잘쓴듯;
그리고 그 모든걸 압도적인 힘으로 끌고가는 미친 캐릭터 히더린 비체... 캐 메이킹이 워낙 훌륭하니까 힘이 있어서 진짜 스토리를 멱살잡고 끌고가버림... 감탄의 연속
사르그나 마가리테 그리고 체사도 잘 만들어졌지만 역시 히더린 조형은 불가침영역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함...